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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욥에게 위로 대신 폭풍우를 보내셨는가 (블레이크의 욥기 판화로 읽다)

by 주립미술관장 2026. 3. 12.

주립미술관 큐레이션 No. 12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 판화가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지만, 학계에서는 그를 단순한 낭만주의자로 분류하기보다 독자적인 신비주의 전통 위에 선 예언자적 예술가로 평가한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어릴 적부터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했던 그는 10대 때부터 판화 기술을 익혔고, 영국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에서 정통 교육을 받았다. 

 

블레이크 미술은 뚜렷하고 강력한 '선(Line)'이 주가 되는데 이는 창조주가 만물에 부여한 명확한 영적 질서와 진리를 상징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선명한 윤곽선으로 묘사하길 선호했다.

 

성경을 예술의 절대 암호로 삼다

블레이크는 철저한 성경 중심의 그리스도인이었다. 당대의 부패하고 형식화된 영국 국교회 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여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사상적 근간은 언제나 성경이었다.

 

그는 성경을 "위대한 예술의 암호(The Great Code of Art)"로 칭송했다. 이 표현은 그의 판화 작품 〈라오콘(Laocoon)〉(c.1826)에 실제로 등장한다. 그는 평생 말씀을 묵상하고 그 계시적 진리를 시와 판화로 번역하는 일에 헌신했다.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응답하시는 여호와

토머스 버츠(Thomas Butts)의 의뢰로 제작된 작품

 

오늘 만나볼 작품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응답하시는 여호와>는 구약성경 욥기 38장 1-2절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을 성경적으로 이해하려면 욥기 1장부터 38장이 되기까지 어떤 이야기와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지 읽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래야 해석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1805–1806년경 후원자 토머스 버츠(Thomas Butts)의 의뢰로 욥기 수채화 시리즈를 먼저 제작했다. 

이후 1823년, 위 수채화를 바탕으로 판화 제작을 의뢰 받았고, 그 결과물이 총 21점으로 구성된 『욥기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s of the Book of Job)』 연작이다. 본 작품은 13번째 판화다.

동판화로 완성한 13번째 판화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응답하시는 여호와, 13번째 판화 (Book of Job, Plate 13, The Lord Answering Job out of the Whirlwind)
종류 : 동판화 크기 : 39.3 * 26.1 cm
소장처 :  성경적 배경 : 구약성경 욥기 38:1-2절

 

작품의 종류는 동판화(Line engraving)로, 예리한 철필로 구리판을 파내어 잉크를 채워 찍는 고도의 수작업으로, 날카롭고 역동적인 선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① 구도와 시선의 흐름
이 작품은 강렬한 수직 축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화면 최상단의 하나님 형상에서 출발한 시선은 회오리바람의 나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며, 자연스럽게 화면 하단의 엎드린 욥과 그 무리에게 도달한다. 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단방향 수직 흐름은 단순한 구도적 선택이 아니다.


블레이크는 이 수직 축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절대적 위계를 시각 언어로 번역했다. 주목할 점은 화면 어디에도 수평선이 지배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안정과 평온을 상징하는 수평 구도를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한순간도 시선을 쉬지 못하게 만든다. 전체 화면이 끊임없이 위에서 아래로, 압도에서 굴복으로 흘러내린다.

  • 소실점의 처리 하나님의 몸 중심부, 즉 뻗은 두 팔이 만드는 교차점이 화면의 암묵적 소실점 역할을 한다. 모든 회오리바람의 곡선과 인물들의 자세가 이 한 점을 향해 수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여백의 활용 하나님을 둘러싼 어두운 배경 공간은 단순한 여백이 아니다. 측량 불가능한 창조주의 광대함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조형 요소로, 인물들이 차지하는 협소한 공간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② 블레이크 특유의 선(Line) 기법
블레이크는 평생 '선(Line)이야말로 진리이며, 흐릿한 윤곽은 거짓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작품에서 그 신념은 동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 신의 형상에 적용된 선 하나님의 신체 윤곽선은 굵고 단호하다. 선이 떨리거나 흐려지는 지점이 없다. 이는 창조주의 존재가 모호하거나 불확실하지 않음을, 오히려 가장 명확하고 절대적인 실재임을 선언하는 조형적 신앙 고백이다.
  • 회오리바람의 선 폭풍을 표현하는 선들은 굵기와 밀도가 다층적으로 변화한다. 중심부로 갈수록 선의 간격이 좁아지고 교차가 빈번해지며, 이를 통해 소용돌이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동시에 암시한다. 명암을 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오직 선의 밀도로만 처리한 것이 이 작품 최대의 기술적 성취다.
  • 인물들의 선 엎드린 욥과 주변 인물들의 선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곡선적이다. 굴복과 유연성을 선의 성질 자체로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 형상의 강직한 직선과 의도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③ 상징 요소 해석
블레이크의 작품에는 단순한 묘사 너머의 상징 체계가 촘촘하게 짜여 있다. 이 판화 역시 화면의 모든 요소가 신학적 메시지를 담은 시각적 언어로 기능한다.

  • 회오리바람(Whirlwind) 구약성경에서 회오리바람(סְעָרָה, se'arah)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Theophany)을 상징하는 대표적 표상이다(에스겔 1장, 엘리야의 승천 등). 블레이크는 이 폭풍을 무질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교한 나선형 궤적을 가진 '통제된 압도'로 그렸다. 폭풍조차 창조주의 질서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 두 팔을 벌린 하나님의 자세 뻗은 두 팔은 창조와 통치의 동시적 선언이다. 심판자의 위협적 제스처가 아니라, 온 우주를 품에 안은 창조주의 주권적 포용을 나타낸다. 동시에 이 자세는 욥기 38-39장에 걸쳐 쏟아지는 창조 질문들—'네가 바다의 문을 닫은 적이 있느냐', '새벽별들이 노래할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의 시각적 구현이다.
  • 납작 엎드린 욥의 자세 욥과 그 무리는 단순히 두려움에 쓰러진 것이 아니다. 블레이크는 이들의 자세를 중동의 전통적 경배 자세인 '프로스트라시온(Prostration)'으로 묘사했다. 모든 변론을 내려놓고 창조주 앞에 자신의 유한함을 온전히 인정하는 행위, 즉 신학적 의미의 '회개(Repentance)'를 몸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 흑백의 색채 선택 채색 없는 순수한 흑백은 금욕적 선택이 아니다. 블레이크에게 색채는 감각적 세계에 속한 것이었다. 흑과 백만으로 구성된 이 판화는 감각 너머의 영적 세계, 즉 순수한 영적 진리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표현한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 의미만 남는다.

 

욥의 침묵

그림 하단에 납작 엎드린 욥의 모습에서 깊은 전율을 느끼게 된다.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끝없이 "왜?"라고 부르짖었지만, 폭풍우 속의 위엄을 대면한 순간 스스로 입을 가리고 침묵했다.


여기서 지난번 살펴본 노아의 위대한 순종이 겹쳐 보인다. 마른하늘에 방주를 지어야 했던 100년의 시간 동안, 노아 역시 그 모든 상황의 '이유'를 다 납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침묵 속에서 묵묵히 톱질을 했고, 욥은 폭풍우 속에서 자신의 모든 변론을 거두었다.


우리의 일상과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칠 때가 있다. 고난은 내가 해석하고 해결해야 할 수학 문제와 같지 않다. 만물의 주권자 앞에 나의 무지함을 고백하고 철저히 엎드려야 할 거룩한 예배의 자리다. 노아가 말씀에 의지해 방주를 지었듯, 우리는 욥처럼 폭풍우 속에서도 나를 이끄시는 보이지 않는 손을 굳게 신뢰해야 한다.

 

절대 주권 앞의 완전한 자기 부인

폭풍우 속의 하나님은 욥에게 단 한 줄의 위로나 변명도 내놓지 않으신다. 그저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기 38:4)며 창조의 광활한 질서를 선포하실 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성적 납득이나 허락을 구하며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 아님을 보여주는 절대 주권의 선언이다. 인본주의적 기복신앙은 이 폭풍우 앞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욥이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 것은 숨겨둔 윤리적 죄 때문이 아니었다. 감히 창조주의 통치 방식을 '감히' 이성으로 재단하려 했던 '부풀려진 자아'를 내려놓은 것이다. 나의 뜻을 꺾고 그분의 거룩한 섭리에 온전히 순복하는 것, 그것이 폭풍우를 잠재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과 함께 오늘의 열두번째 큐레이션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