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립미술관 큐레이션 No. 20
어느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창녀였고, 이스라엘의 적국이자 이방신을 섬기는 가나안에 살고 있었다. 훗날 하나님은 그녀를 메시아의 혈통 안에 두시며 상식을 초월하는 은혜의 역사를 기록하신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라합이다.
📌 목차
- 오늘의 그림 —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의 목판화
- 라합은 누구인가 — 성경 본문
- 거짓말, 그러나 믿음 — 라합의 결단
- 주홍 끈 —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같은 것
- 라합의 고백 — 하나님을 아는 이방인
- 믿음의 결실 —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다
- 오늘 우리에게 — 신분과 상식을 초월한 은혜
- 하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
1. 오늘의 그림 —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의 목판화
오늘 만나볼 작품은 19세기 독일의 화가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1794~1872)가 성경 전체의 중요한 장면들을 총 240장의 목판화로 완성한 걸작, 〈그림으로 보는 성경(Die Bibel in Bildern)〉 중 라합을 다룬 한 장면이다.

| 항목 | 내용 |
| 작품명 | 그림으로 보는 성경 (Die Bibel in Bildern / The Bible in Pictures), Plate 66 — "Rahab saves the Israelite spies" |
| 화가 |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1794~1872) |
| 제작 연도 | 1851~1860년 (30회 분책 출판, 완간 1860년) |
| 재료 | 목판화 (Woodcut / Holzschnitt) — 슈노르가 목판에 밑그림 제작, 판각은 별도 장인이 담당 |
| 성경 본문 | 여호수아 2장 15절 (라합이 정탐꾼을 창문으로 내려보내는 장면) |
이 목판화들은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의 보조 이미지이다. 주인공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 속에 담긴 한 여인의 믿음과 그 믿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2. 라합은 누구인가 — 성경 본문
성경 본문은 여호수아 2장 1~21절, 6장 17~25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있을 때, 여호수아는 두 정탐꾼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 그들이 숨어든 곳이 라합의 집이었다.
라합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그녀는 기생(창녀) 이었다. (수 2:1) 가나안 족속이었고, 이스라엘의 적국 여리고에 살았으며, 성벽 위에 집을 가진 하층민이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달랐다.
3. 거짓말, 그러나 믿음 — 라합의 결단
여리고 왕이 정탐꾼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라합에게 그들을 내놓으라 명했다. 라합은 왕의 신하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나는 그들이 어디서 온 것을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나간 것은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이었으나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하노니 너희는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따라잡으리라. (수 2:4~5)
이 거짓말이 신학적으로 논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행위를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행위로 해석한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 개역한글)
야고보서도 같은 결론이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신학적으로 라합의 거짓말 자체가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인간의 믿음의 행위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이 이 장면의 핵심이다. 그녀는 완벽한 도덕적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선택했다.
4. 주홍 끈 —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같은 것

라합이 정탐꾼들을 창문으로 내려보낸 뒤, 정탐꾼들은 그녀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너의 부모와 형제와 아버지의 온 가족을 네 집에 모으라." (수 2:18)
붉은 줄(주홍 끈) 이다.
이것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이 붉은 줄은 출애굽기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정확히 같은 구조를 가진다.
| 유월절 | 라합의 붉은 줄 |
|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 | 창문에 매단 주홍 끈 |
| 피가 있는 집은 심판을 면함 | 붉은 줄이 있는 집은 구원받음 |
|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 이방인 라합 가족의 구원 |
| 어린양의 피를 믿는 믿음 | 정탐꾼의 말을 믿는 믿음 |
그리고 그 붉은 줄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가리키는 예표이다. 창문에 매달린 붉은 줄 하나가, 수천 년의 구속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담고 있었다.
라합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믿고 매달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5. 라합의 고백 — 하나님을 아는 이방인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주며 했던 고백은 놀랍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 하늘에서도 아래로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 2:9~11)
가나안 창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로 하늘에서도 아래로 땅에서도 하나님" 이라는 최고의 신앙고백을 한 부분은 신명기 4:39의 모세의 선언과 동일한 표현이기에 더욱 가슴에 울림을 준다.
그녀는 무엇을 들었는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 2:10)
소문으로 들었다. 직접 보지 못했다. 그러나 들은 것으로 믿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라합의 믿음은 이 말씀의 살아있는 증거이다.
6. 믿음의 결실 —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던 날, 이스라엘 군대는 성 전체를 진멸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창문에 붉은 줄이 달린 집이었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수 6:22)
라합과 그녀의 가족 전체가 살아났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러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수 6:25)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백 년 후, 신약성경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쓴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마 1:5~6)
라합 →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 ... → 예수 그리스도.
가나안 창녀의 믿음 하나가, 곧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이어졌다.
7. 오늘 우리에게 — 신분과 상식을 초월한 은혜
라합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못할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에 조건을 붙인다. 충분히 깨끗해야, 충분히 신실해야, 충분히 오래 믿어야, 어떤 체험을 해야, 통성으로 기도해야, 주를 세 번 불러야, CCM을 부르며 눈물을 흘려야, 방언을 해야, 예언을 하거나 꿈에서 무언가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혹은 반대로, 자신이 너무 더럽고 너무 오래 틀렸기 때문에 이제는 은혜가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라합은 그 모든 논리를 무너뜨린다.
그녀는 가나안 창녀였다.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 밖에 있었다. 그녀가 만난 하나님은 소문으로 들은 하나님이었다. 그 믿음은 불완전했고, 그 상황은 극적이었으며, 그 행동은 도덕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셨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자격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학력, 경력, 신분, 인맥, 능력. 이것들이 없으면 기회도 없다. 교회 안에서조차 이 논리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 믿은 사람, 집안이 좋은 사람,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는 암묵적 서열이랄까.
라합의 이야기는 그 서열표를 뒤집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분이나 체험의 종류를 묻지 않으신다.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조건을 묻지 않으신다.
오직 믿음을 보신다.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단 라합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이다. 그 피를 믿고, 그 약속에 의지하고, 그 문 안에 머무는 것이다.
8. 하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
라합의 이야기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선언하시는 것은 이것이다.
나의 은혜는 너의 과거보다 크고, 너의 신분보다 높으며, 세상의 상식보다 넓다.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사람들을 나열하는 그 위대한 장에 라합의 이름이 있다. 아브라함, 모세, 기드온, 다윗과 함께. 가나안 창녀의 이름이.
이것이 복음이다. 자격 있는 자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으로 자격을 주시는 하나님. 신분을 초월하고, 과거를 덮으시며, 불완전한 믿음을 붙잡아 메시아의 혈통으로 이으시는 하나님.
오늘 당신이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라합과 그녀의 믿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라.
"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개역한글)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