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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합니다 | 귀스타브 도레 〈아비멜렉의 죽음〉과 사사기

by 주립미술관장 2026. 4. 18.

주립미술관 큐레이션 No. 24

 

3년을 버텼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았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셨다.

그러나 반드시 갚으셨다.


📌 목차

1. 작품 기본 정보

2. 화가 귀스타브 도레

3. 그림 속으로 — 도레가 담은 심판의 순간

4. 성경 속으로 — 아비멜렉은 누구인가

5. 요담의 저주 — 가시나무 우화

6. 하나님의 때 — 3년이 지나서야

7. 불법한 권력의 패턴 — 이것은 반복된다

8. 흔들리는 성도에게

9. 하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

10. 요약 및 감상 포인트


 1. 작품 기본 정보

아비멜렉의 죽음 (The Death of Abimelech)

 

항목 내용
작품명 아비멜렉의 죽음 (The Death of Abimelech)
화가 귀스타브 도레 (Gustave Doré, 1832~1883)
제작 연도 1866년
기법 목판 판화 (Wood Engraving)
수록 라 그랑드 비블 드 투르 (La Grande Bible de Tours, 1866) 241점 중 하나
성경 본문 사사기 9장 50~57절

 

2. 화가 귀스타브 도레

귀스타브 도레(1832~1883)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판화가이자 삽화가이다. 1866년 출판된 도레 성경 삽화 전집은 241점의 목판화로 구성된 19세기 성경 시각화의 정점이다. 빛과 어둠의 극적 대비, 군중의 역동적 묘사, 역사적 현장감으로 성경의 드라마를 압도적으로 시각화했다.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알 선지자들의 죽음〉과 동일한 연작이다.


3. 그림 속으로 — 도레가 담은 심판의 순간

화면은 혼돈이다. 성벽 아래 전장이 펼쳐져 있고, 중앙에 아비멜렉이 쓰러져 있다. 그의 주변으로 병사들이 뒤엉켜 있다. 위에서는 성루의 여인이 맷돌을 던진 직후의 장면이 포착되어 있다.

아비멜렉의 죽음 (The Death of Abimelech)

 

도레는 맷돌에 맞은 아비멜렉의 모습을 정밀함으로 묘사했으며, 그 주변을 혼란의 표정을 담은 군중으로 채웠다.

 

이 그림은 부상당한 아비멜렉이 자신의 병기 든 소자에게 자신을 찔러 죽이라고 명령하는 순간을 담는다. 여자에게 죽임당했다는 수치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도레는 이 장면을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으로 그렸다. 가장 화려한 권력의 정점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4. 성경 속으로 — 아비멜렉은 누구인가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의 사사 기드온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세겜의 첩이었다. 적통이 아니었다.

 

기드온이 나이가 들고 죽자 아비멜렉은 어머니의 친족들을 통해 세겜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바알브릿 신전에서 세겜 사람들에게 받은 은 70개로 건달들을 고용했다. 건달들과 함께 그는 자신의 이복형제 70명을 한 돌 위에서 학살했다. 막내 요담만이 숨어서 살아남았다. (성경에 적힌 '한 돌 위에서'라는 말은 당시의 공개 처형 장소를 가리킨다.)

 

세겜 사람들과 밀로 집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없던 시대에, 세겜을 중심으로 스스로 왕이 된 자였다.

 

그의 이름 아비멜렉의 뜻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이다. 왕이 아니었던 아버지 기드온은 왕이 되어 달라는 백성의 요청을 거절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들도 그 뜻은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삿 8:23).

 

그러나 그 아들 중 한 명,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


5. 요담의 저주 — 가시나무 우화

살아남은 아들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 세겜 사람들에게 우화를 선포했다.

 

"나무들이 왕을 세우려 했다. 감람나무에게 청했다. 거절했다. 무화과나무에게 청했다. 거절했다. 포도나무에게 청했다. 거절했다. 쓸모 있는 나무들은 모두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게 청했다. 가시나무가 말했다."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삿 9:15)

 

가시나무는 그늘을 만들지 못한다. 그 아래서는 쉴 수 없다. 그러나 오히려 불이 나면 레바논의 백향목까지 태운다. 아무 유익이 없고 해만 끼치는 지도자의 자화상이다.

 

요담은 우화를 마치고 저주를 선포했다.

만일 너희가 기드온의 집에 진실과 의리를 행하였으면 너희는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 집에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삿 9:19~20)

 

저주를 선포한 요담은 즉시 도망쳤다. 그는 아비멜렉을 막을 힘이 없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물러났다.


6. 하나님의 때 — 3년이 지나서야

아비멜렉은 3년씩이나 통치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나님이 몰라서 그냥 두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약하셔서 막지 못하신 것도 아니었다.

이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니. (삿 9:23)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셨다. 그러나 그 방식은 인간이 예상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아비멜렉을 직접 치신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를 쪼개셨다. 그들이 서로 불신하게 하셨다. 동맹이 균열되고, 내부 자체적으로 무너지게 하셨다. 그리고 아비멜렉의 마지막을 이름 조차 기록되지 않은 한 여인이 던진 맷돌로 거두신다.

 

성경은 그 끝을 이렇게 기록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아비멜렉이 그의 아버지에게 행한 악 곧 형제 칠십 인을 죽인 것을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을 그들의 머리로 돌리셨으니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하였더라. (삿 9:56~57)

 

하나님은 하셨다.

70인의 피. 요담의 저주. 세겜 사람들의 배신.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다.

 


7. 불법한 권력의 패턴 — 이것은 반복된다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사사기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그리고 인류 역사 전체와 오늘날까지 이 패턴은 반복된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은 자가 불법한 수단으로 권좌에 오른다. 당장은 막을 수 없고, 괴로움은 백성의 오롯이 몫이다. 하나님이 왜 그냥 두시는지 울부짖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악을 갚으신다.

아비멜렉에게 하셨던 것처럼.

 

사사기의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 고통이 온다. 고통 중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신다. 그러나 사사기 9장의 아비멜렉 이야기는 이 구조에서 벗어난다. 하나님이 세운 사사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세운 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심판이었다.

 

오늘도 이 패턴은 다른 옷을 입고 반복된다. 불법한 수단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 쓸모 있는 나무 대신 가시나무가 탐내는 일. 성경을 읽는 자는 이 패턴을 알고 있다. 그리고 결말도 알고 있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8. 흔들리는 성도에게

아비멜렉이 3년을 통치하는 동안, 세겜의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기드온의 70명 아들들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 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 한 돌 위에서 학살당하는 것을 보았다. 남에게 피를 내고 스스로 왕이 된 사람이 3년을 버티는 것을 보았다.

 

그 시절 세겜 사람들이 하늘을 보며 물었을 것이다.

왜 하나님은 이것을 그냥 두시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두신 것이 아니었다. 때를 기다리고 계셨다.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가장 완전한 심판을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원치 않는 일, 어려운 일, 불의해 보이는 현실 가운데 있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고 비교할 수 없이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반드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19)

 

하나님의 거대한 시간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된 방향을 가지고 있다. 악은 번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말이 있다. 의는 눌리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서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9. 하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

도레의 판화가 이 혼돈의 전장 위에 새겨 넣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진다.

 

3년을 버틴 아비멜렉의 끝은 이름 조차 기록되지 않은 어느 여인이 던진 맷돌이었다. 70명의 목숨과 바꾼 세운 왕좌의 끝에 예정되어 있던 것은 죽음이었다. 가시나무는 결국 불을 냈고 자기 자신을 태웠다.

 

잠깐인 이 세상에서 불의한 것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많다. 그때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하나다. 성경을 펼치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이 그냥 두신 역사는 없다는 걸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하나님은 반드시 하신다는 걸 목격하게 되고 믿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아니 흔들려서는 안될 이유이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음성은 성경에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을 가르쳐야 하며, 성도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오히려 토크콘서트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설교, 거룩함이 빠진 감정적 찬양이 교회가 되면 성도의 눈은 어두워지는 것이다.

 


10. 요약 및 감상 포인트

① 맷돌을 던진 여인

이름이 없다. 성경은 그냥 "한 여인"이라고 기록한다. 흥미롭게도 이 여인은 그림에서 조차 형상이 나와 있지 않다. 아비멜렉 주변에 서 있는 몇 인물들이 위를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여인의 위치 정도만 확인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름 없는 여인의 손을 쓰셨다.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쓰이는 도구는 항상 하나님이 선택하신다.

 

② 아비멜렉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라

아비멜렉이 자기의 병기 잡은 소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르켜 이르기를 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 하노라 (삿 9:54)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자의 마지막 관심은 여전히 체면이었다. 여자에게 돌을 맞고 머리가 깨져 죽게 생긴 것이 수치였고 그게 두려워 마치 전장에서 싸우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했다. 그는 체면 구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었다.

 

③ 요담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라

요담은 저주를 선포하고 도망쳤다. 직접 싸우지 않았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물러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리이다.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다.

 

아비멜렉의 죽음 (The Death of Abimel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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