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교회에 다닌다면 최소 한 번은 들어봤을 이름, 장 칼빈 혹은 장 칼뱅 (John Calvin).
오늘 우리가 다루는 질문은 역사적 질문이 아니다.
살아있는 질문이다. 500년 전 제네바에서 칼빈이 선포했던 그 말씀은, 오늘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있을까? 우리는 칼빈의 이름만 빌린 채 전혀 다른 신앙을 살고 있는 걸까?

이 글은 칼빈을 우상화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는 인간이었고, 실수도 했으며,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통해 교회에 주신 것 <오직 하나님의 말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은 500년이 지난 오늘도 교회가 단단히 붙들어야 할 기둥이다.
종교개혁은 왜 필요했는가
칼빈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그가 싸워야 했던 것을 이해해야 한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기 전, 서유럽의 교회는 약 1,000년간 로마 카톨릭 교회의 독점 아래 있었다. 그 1,00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성경이 사라졌다
라틴어(Vulgate)로만 존재하는 성경은 일반 성도가 읽을 수 없었다. 성경 해석권은 교황과 공의회에게만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에게 닿을 수 없었다.
† 구원이 팔렸다
면죄부(Indulgence), 즉 돈만 내면 죄의 형벌이 면제된다는 카톨릭의 어리석은 제도는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교황 레오 10세(Leo X)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재원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대량 판매하는 죄를 범한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교회의 상품이 된 것이다.
† 성직자의 타락
교황권이 절정에 달했던 중세에 교황들은 정치권력 다툼에 개입하고, 정부(情婦)를 두고,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성직 매매(Simony)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사제들은 라틴어로 진행되는 예배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 감히 행위로 대체된 은혜
카톨릭은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공로가 협력한다고 함부로 가르쳤다(Semi-Pelagianism). 성례, 선행, 성인 숭배, 고해성사, 즉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 쌓였다. 성경이 선포하는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은 사라졌다. 이것이 루터와 칼빈이 맞서야 했던 교회였다.
종교개혁(Reformation)은 반란이 아니었다. 교회를 파괴하려는 운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Reform>, 쉽게 말해 다시 형성하고자 했던 운동이었다. 그들의 구호가 복구(Restoration)가 아닌 개혁(Reformation)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빈은 이 흐름의 2세대 개혁자다. 루터가 불을 지폈다면, 칼빈은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신학적 체계로 담은 인물이다.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존 칼빈)
존 칼빈은 누구인가

· 생애 :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
· 출생지 : 프랑스 피카르디(Picardy) 지방 누아용(Noyon)
· 주요 사역지 : 스위스 제네바(Genève)
칼빈은 처음부터 신학자가 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아버지 제라르 코뱅(Gérard Cauvin)은 아들인 칼빈을 법학자로 키우려 했고, 칼빈은 파리의 몽테귀 대학(Collège de Montaigu)과 오를레앙(Orléans), 부르주(Bourges)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1533~1534년경, 칼빈은 회심을 경험했다. 그는 이것을 훗날 이렇게 묘사한다.
"하나님이 갑작스러운 회심으로 내 마음을 다스리시고 가르치기 쉬운 상태로 만드셨다."
(칼빈의 시편 주석 서문, 1557)
이 회심은 단순한 감정적 체험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한, 이성과 의지와 감정 전체를 포괄하는 전인격적 변화였다. 칼빈 자신이 훗날 신학화할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그는 자기 자신의 삶 속에서 먼저 경험한 것이다.
회심 후 칼빈은 프랑스에서의 박해를 피해 바젤(Basel)로 이동했고, 1536년 27세의 나이에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초판을 출간했다. 이 책 하나로 그는 하루아침에 유럽 개혁신학계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같은 해, 프랑스의 전쟁을 우회하기 위해 경유하게 된 제네바에서 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을 만나면서,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이후 28년간(추방 3년을 제외하고) 제네바는 칼빈의 사역지가 되었다.
종교개혁에서 칼빈의 위치
종교개혁은 칼빈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전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있었고,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가 있었으며, 멜란히톤(Philip Melanchthon, 1497~1560)이 있었다.
칼빈은 종교개혁의 체계화자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다면, 칼빈은 그 불씨를 정밀하게 연소시킨 인물이다. 루터가 로마 가톨릭의 오류에 맞서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선언했다면, 칼빈은 그 복음이 교회, 예배, 윤리, 사회, 정치 모든 영역에서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지를 치밀하게 설계했다.
각 종교개혁자의 강조점 비교
| 구분 | 루터 | 츠빙글리 | 칼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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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강조 | 칭의론(Sola Fide) | 성경 권위 | 하나님의 주권 |
| 성찬론 | 공재설 | 기념설 | 영적 임재설 |
| 교회와 국가 | 두 왕국(분리적) | 교회=국가 | 두 왕국(구분적 협력) |
| 예배 원리 | 규범 원리 | 규정 원리 | 규정 원리(엄격) |
| 교회 정치 | 감독제(후계) | 시의회 주도 | 장로제(4직분) |
| 신학 체계 | 상황적·논쟁적 | 인문주의적 | 체계적·종합적 |
칼빈은 루터의 칭의론을 온전히 계승하면서도,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이라는 더 큰 우산 아래 모든 신학적 주제를 재배치했다. 그 결과물이 기독교 강요 최종판(1559)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지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그것이다." (기독교 강요 I.1.1)
이 문장 하나가 칼빈 신학 전체의 출발점이다.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무너짐을 알아야 한다.
칼빈이 교회에 남긴 다섯 개의 기둥
† 기둥 1 : 하나님의 절대 주권 (Sovereignty of God)
칼빈 신학의 중심은 TULIP이나 예정론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TULIP은 그 결과물이다.
"하나님은 단지 만물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만물의 주권적 통치자이시다. 그분의 섭리는 피조 세계 전체에 미치며, 그 어떤 것도 그분의 허락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독교 강요 I.16.1)
이 주권은 구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 자연, 정치,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다. 이것이 칼빈주의적 세계관의 기초다. 오늘날 교회가 상실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을 예배당 안에만 가두는 신앙, 주일에만 기억하는 하나님, 어려울 때만 찾는 하나님, 이것은 칼빈이 가르친 하나님이 아니다.
† 기둥 2 :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칼빈에게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텍스트가 아니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며, 교회와 신자의 삶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한 권위다.
"우리는 성경을 다른 어떤 것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성경은 자기 스스로를 증거한다(autopistos)." (기독교 강요 I.7.5)
성경의 자기 증거(autopistia, 이것이 칼빈의 성경관이다. 성경의 권위는 교황으로부터 오는 것도, 공의회의 결정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에 의해 신자의 마음에 확신을 준다. 오늘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는 개인적 체험이 성경 위에 놓이는 신앙 풍토는 칼빈이 가장 경계했을 것이다.
† 기둥 3 : 예배 규정 원리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루터교는 성경이 금하지 않은 것은 예배에 허용한다(규범 원리). 그러나 칼빈은 달랐다. 성경이 명하거나 허락한 것만이 예배에서 행해질 수 있다(규정 원리).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행위다. 하나님이 어떻게 예배받기 원하시는지는 하나님만 결정하실 수 있다. 인간이 창의적으로 예배 방식을 설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을 올려놓는 것이다. 제2계명이 금하는 것이 단지 물리적 우상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다. 이것이 칼빈의 예배 신학이다.
† 기둥 4 : 장로 정치 (Presbyterian Church Government)
칼빈은 1541년 교회 규정(Ordonnances Ecclésiastiques)을 통해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4직분(목사, 교사, 장로, 집사)을 제네바 교회에 회복시켰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목사 1인의 절대 권력이 없다는 것이다. 장로들과 함께 컨시스토리(치리회)를 구성하여 교회를 다스린다. 목사는 말씀을 선포하는 자이지, 교회를 사유화하는 자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담임목사 1인 세습, 교회 재정의 불투명성, 성도들의 권징 무력화, 이 모든 것은 칼빈이 회복시키려 했던 장로 정치의 정신과 정반대 방향이다.
† 기둥 5 : 소명론 (Doctrine of Vocation)
칼빈은 루터의 소명론을 계승하면서 이것을 더욱 일상의 깊은 곳까지 밀어 넣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Vocatio)은 성직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부, 상인, 어머니, 장인, 모든 세속적 직업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부르심이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station)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것, 이것이 거룩한 삶이다." (기독교 강요 III.10.6)
이것이 이후 막스 베버(Max Weber)가 분석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신학적 원천이다. 세속적 직업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는 칼빈의 소명론은 서구 문명의 노동 윤리를 형성했다.
칼빈의 유산: 그는 어디까지 영향을 미쳤는가
칼빈의 사상은 제네바를 넘어 유럽 전체, 나아가 세계 문명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 스코틀랜드 → 장로교회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가르침을 직접 받고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를 세웠다. 오늘날 한국 장로교의 신학적 뿌리가 여기 있다.
† 네덜란드 → 개혁교회 도르트 총회(Synod of Dort, 1618~1619)에서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가 공식 교리로 확정되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는 칼빈주의 신학의 또 다른 강줄기다.
† 영국 → 청교도 칼빈의 예배신학과 교회정치는 영국 청교도(Puritans)를 형성했고, 청교도들은 17세기 미국으로 건너가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를 꿈꾸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칼빈주의적 인간관(모든 인간은 부패했기에 어느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해서는 안 된다)이 놓여 있다.
† 한국 → 예장 합동, 대신, 고신 한국 장로교는 19세기 말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을 통해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오늘날 예장 합동, 예장 대신, 고신, 대신 등 보수적 장로교 교단이 개혁신앙의 기치를 들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정신
칼빈은 1564년 5월 27일, 55세의 나이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임종 때 그는 자신을 제네바 도서관 부지에 아무런 표시도 없이 묻어달라고 했다. 자신의 무덤이 순례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덤은 지금도 찾기 어렵다. 하나님의 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뿐이다.
오늘 한국 교회가 칼빈에게서 계승해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
† 첫째, 말씀의 중심성을 회복해야 한다.
설교가 감성적 위로의 수단으로 전락한 교회, 메시지보다 세속적 음악이 예배의 중심이 된 교회, 강단에서 인간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많이 강연되듯 하는 교회, 이것은 칼빈이 그토록 싸워 멀리하려던 그 교회다.
† 둘째, 하나님의 주권 앞에 인간의 공로를 내려놓아야 한다.
기복신앙, 번영신학,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응답받았다"는 논리 구조,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인간 행위가 하나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은밀한 신학이 있다.
칼빈이 가르친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이나 행위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주권적 뜻에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다.
† 셋째, 장로 정치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담임목사 1인의 목회 독점, 교회 재정의 사유화, 세습. 이것들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회복시키려 했던 교회 정치의 전면적 파괴다. 성도들이 교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장로들이 실질적인 치리권을 갖고, 목사가 말씀 선포의 종으로 섬기는 구조, 이것이 칼빈이 신약성경에서 발굴한 교회 정치다.
† 넷째, 신앙을 삶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칼빈의 소명론은 예배당 안의 신앙과 예배당 밖의 삶이 분리된 이중적 그리스도인을 거부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실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주일과 월요일이 다른 삶,
이것은 칼빈의 신앙이 아니다.
† 다섯째, 겸손해야 한다.
칼빈은 자신의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않았다. 비록 그를 기록한 자화상들이 남아있지만 그는 자신의 얼굴조차 기억되길 꺼려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형 교회 담임목사들은 어떤가? 메신저가 아닌 메시지를 자처하고 교회의 얼굴이 되어 바벨론탑 위치에 오르길 갈망하지 않는지. 칼빈은 이것을 어떻게 보았을까?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 라틴어 격언은 칼빈의 정신이 요약된 문장이다. 개혁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한, 말씀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교정하고 갱신하는 일은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칼빈에게서 계승해야 할 것은 그의 이름이나 특정 교단의 소속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든 인간의 권위와 전통과 감성을 내려놓는 그 자세, 그것이 우리가 받아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개혁의 정신이 아닐까?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4-5)


